일기

20170310

권정기린 2017. 3. 10. 20:07

아이가 생긴 이후 삶의 우선 순위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아무리 귀찮아도 바닥 청소를 빼먹지 않고, 항상 아이 물 그릇을 신경 쓰고, 적정 온도와 적정 습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양파가 뛰어 노는 동안은 양파에게 위험한 장소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양파가 넘어지지 않을지 지켜본다. 내 밥을 먹으면 아이가 밥 먹을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하루는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할지에 대해 골몰하고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온갖 물건들이 필요해졌다.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길 때도 있지만, 아이를 보는 순간 곧 아이에게 온 신경이 다 간다. 어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잘 안 들고, 오래 나가 있을 수도 없다. 양파는 짖지도 떼를 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양파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왜 사람들이 강아지 밥 때문에 그렇게 발을 동동거리고 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강아지는 하루 정도 혼자 있어도 되는 동물인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하루든 이틀이든 나 혼자 밥 먹고 물 마시고 내 할 일 하며 지낼 수 있지만, 양파는 내가 없으면 밥도 물도 놀이 상대도 없어진다. 언니와 둘이 어떤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한다.

내가 가장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가 내 삶이 되었다. 배우자가 생기고, 아이를 기르는 삶. 누군가는 나에게 그게 무슨 결혼이고 강아지가 무슨 아이냐며 우스워할 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내가 그렇게 보인다. 가족이 반드시 필요한 어린 아이를 키우며, 서로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삶. 나는 내가 언제까지나 혼자일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 와서 결혼한 이와 아이를 가진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라는 것은 또 이렇게 순간이다. 되어 보니 알겠다. 모든 것을 그저 한 순간에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가 아프면 발을 동동 구르고, 미치겠고, 온갖 일들이 떠올라 괴롭다. 아이가 밥을 잘 먹으면 다 좋다. 그보다 뿌듯한 일이 없다. 하루 종일 아이 밥 생각만 하고 있다. 거기에 조금 남는 시간에 언니의 일정과 나의 일정을 조금 끼워 넣는다. 그러니 하루가 대체 어떻게 가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바쁘다. 이런 삶을 계획해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