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8

 | 일기
2011. 3. 8. 20:20
 이제 더 이상 나를 돌볼 필요 없다는 선언을 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우리가 언제나 한 사람이 나머지를 돌보는 관계였던가. 그러나 그랬다. 실상 얼마나 많은 부분 나를 돌보는 스스로를 통해 기쁨을 얻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화를 내면 안된다는 다짐, 경제적인 부담, 희생하고 있다는 억울함,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서러움을 통해서 얼마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그런 자신에게 감탄하는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나는 언제나 몰랐고 모르고 모르고 싶다. 돌봐야 할 대상인 내가 사라졌을 때 느끼는 상실감, 더 이상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황당함, 이용당하고 버려진 느낌들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몸서리치게 싫어하는지도 설명할 필요 없다. 나의 죄책감, 뿌리가 없는 미안함, 짐이 되고 있다는 느낌, 더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 언제나 모자랐고 모자란 사람일 나에 대한 실망, 기대고 싶은 마음과 더 이상 의존적이면 안된다는 자책, 끊임없이 스스로와 싸우고 실망하고 다짐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망가진 나를 정말로 돌볼 사람은 나다. 언제나 그랬지만 나는 그것을 할 줄 몰랐고, 하고 싶지도 않았고, 누군가 나를 돌보고 치료해줄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었던 것 같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연애는 언제나 상대를 다치고 지치고 망가뜨린다는 두려움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몇 번의 연애 관계를 만들고 끝내면서 내게 남은 것은 고마움과 미안함과 다시는 이런 식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다짐은 지켜진 적 없다. 나는 언제나 다시는 연애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는 누군가를 지치고 아프고 망가진 상태로 만들지 않겠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나를 돌보는 사람이 내게 기대어 있는 것인지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어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분명하다. 어떤 누구도--나 자신조차--내가 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나를 온 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그 사람은 서서히 망가지고 가라앉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라한들 또 어떤가.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괴롭거나 괴롭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것에 대해 죄스러워 하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늘 사과하고 싶어하면서. 망가진 것이 나인지 상대인지 모르면서. 누군가를 망치고 있는 관계를 내 손으로 잘라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라내는 것이 '감히' 나라는 사실에 대해 또 다시 빌고 싶어하면서.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쁜년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견딜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내가 대체 뭐라고? 나 따위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나 따위가? 사랑은 받아 본 사람이 받을 줄 아는 것인걸까? 나는 어디가 망가졌기 때문에 이 따위 인간인가.
Posted by 권정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