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새롭게 얻은 깨달음처럼 적는다.
결국은 쓰는 사람이 이긴다.
써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가 머리속에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꺼내놓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재미가 없는 이야기라도 계속 계속 쓰다 보면 누군가는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글은 써야만 한다. 그래야 독자가 생긴다. 독자가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 본연의 목적은 이룰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느끼길 바란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좋다. 우울함, 기쁨, 공포, 혼란, 재미 그 무엇이라도 좋다.
읽는 사람--독자--에게 아무것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글의 효용은 무엇인가?
기록물조차도 읽는 이에게 생각하게 하고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생각과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에게 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문자를 조합해서 문장을 써낸다고 모두가 글은 아니다.
수 없이 메모하고 계속해서 써야 한다. 항상 알고 있었지만 항상 실천하지 못한 일이다. 나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확신이 없다. 좋은 글을 쓰리라 다짐했을 때 내가 상정한 좋은 글은 무엇이었나?
아주 재미있는 글이었다. 그 재미는 여러가지 종류일 수 있겠지만, 아주 빨려들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좋은 글은 그런 것이었다.
언제까지 남들의 글을 읽으며 부러워하는 삶만 살 수는 없다. 의문문은 그만두자. 명확하게 끝나는 문장을 쓸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반드시. 만년필과 종이에 묻혀 사는 삶을 꿈꾸었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삶을 원한다. 책과 노트와 펜이 나를 둘러싼 삶. 나는 할 수 있다. 이전보다 그런 삶에 더 다가왔다.
지금의 나는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냐고? 있다. 그런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숨 쉬는 일도 버거운데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언가에 절박하게 매달리지도 않아서 한심하게 보일 법한 그런 날들이 있다. 그 시간마저 나를 여기로 인도하는 과정이었으니 후회는 없다.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하나 둘 버리고 잃어버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렇게나 가진것이 많았다. 그러니 버릴 것이 많았던 것이다. 앞으로도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게서 떠나고 나서야 내가 가지고 있었음을 아는 많은 순간과 사람들이 있겠지. 어쩌면 삶은 그렇게 손에 쥔 것들을 놓아가는 과정이리라.
너무 많이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엄마도 내 친구들도. 많은 고통은 없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나에게 바라는 축복이다. 어쩔 수 없이 미운 마음을 안고 사랑하면서 살아갈테니, 삐죽 솟은 미움들에 너무 많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