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1

 | 일기
2017. 2. 21. 22:33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아침에 일어났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내 하루는 정오가 지난 뒤에 시작했었는데, 일곱시에 언니가 일이 있어서 함께 일어났다. 언니는 더 자라고 얘기했지만 어쩐지 말똥말똥해져서 언니를 보내고도 못잤다. 이상하지, 평소에는 그렇게 잠이 쏟아지는데.

그래서 뭘 할까 고민하다 일단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바람이 꽤 차가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커피와 베이글을 먹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었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만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다 문득 처리할 일이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서둘러 작은 집에 돌아와 낯선 친구에게 빌린 옷을 꺼냈다. 이미 세탁해 둔 옷이어서 가져다주기만 하면 되는 깨끗한 옷이다. 고마운 마음에 몇 가지 주전부리를 함께 넣은 가방을 가게에 걸어두고 왔다. 낯선 친구가 잘 발견했기만을 바란다.

그 후에는 피부과에 가려고 했지만, 점심 시간에 걸려 미용실로 향했다. 얼마 전 우습게 잘려버린 머리칼을 수습할 수 있을까 해서 이전에 다니던 미용실로 갔다. 다행히 아주 간단하게 다른 스타일로 변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언니를 만나 함께 커피를 마셨다.

언니와 나는 처음 만난 순간--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니다--부터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바깥 데이트는 설레고 신선하다. 햇살이 내리쬐는 평일 낮에 언니와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니. 함께 지낸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하며 웃는다. 우리는 생활을 나누는 관계라서 보통의 연애와는 다른 모습이 많다. 그러니 남들은 지겹도록 했을 영화관이며 카페가 아직도 좋은거다. 나쁘지 않다. 생활을 나누는 관계의 안정감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더 많이 배려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생활하면서 놓지 않는다. 하지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내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다. 무엇이 더 크고 작은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지금 행복한가 자문하면, 답은 언제나 그렇다,이다.

문장을 너무나 오래 쓰지 않아서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어색하고 잘못되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일기를 쓰려고 한다. 내가 꾸준히 무엇인가 쓰는 습관을 들여야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만 하고 싶지 않다. 큰 유명세를 원하지도 않는다. 꾸준히 쓰고, 그것을 통해 내 밥벌이를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제 미루고 돌아가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근처에 사는 친구는 몸살에 걸렸다고 한다. 약을 사다주마 했으나 친구는 그냥 쉬겠다고 했다. 친구도 나도 폐끼침을 싫어하는 인간이어서 아직까지 관계가 좋은 것을 알지만, 이럴 때면 서운한 마음도 든다. 아직도 내가 혼자 앓아누웠을 때 멀리서 달려왔던 친구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 그 따뜻함을 나도 친구에게 주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공간이 필요한 동물들이고, 그 넓이는 가변적이며, 선을 정하는 의사를 존중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저 죽을 것 같이 아프면 반드시 연락하라는 당부만 전하고 말았다. 친구의 애인이 부디 내 친구를 잘 간호해주길 바란다. 물론 친구는 혼자서 앓아 눕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최근 열 시간 넘게 연속으로 깨어 있었던 적이 없다. 한편으로는 우울증이 심해졌나 고민이 들고, 한편으로는 계속 이렇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울증 약은 꾸준히 먹고 있다. 상태는 오르락 내리락 여전하다. 어떤 때에는 모든 것이 다 나아서 약을 당장 끊어도 될 것 같다가 어떤 때에는 제발 약을 두 배로 늘려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그러니 아마 지금의 약이 내게 정량일 것이다.

열심히 제련한 문장을 읽지 않아서 이렇게 언치가 된 것일까? 계속 쓰기만 한다고 나아질까? 누군가 고쳐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몸이 너무 피곤하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일단은 쓰자. 그 후에 고민하자.

Posted by 권정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