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만큼이나 읽는 것도 고역이다. 이것이 내 할 일이라고 여기며 소설을 읽어내려가자면 속이 답답하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다. 아무도 시킨 적 없으나, 내게 독서를 명령한 누군가를 향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소설은 재미 있으나 그것마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자리에 있는지 고민하고, 또 괜찮아졌다가 다시 절망하고. 친구였던 이들을 검색해보고 그들을 질투하고 때로는 연민하고. 내가 얼마나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불안하고 어려웠고 다시 또 절망하고 이를 악 물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그래서 지금 내 손에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만큼 왔는지 가늠한다. 그러다가 곧 팔을 내려 버린다. 팔이 있다면. 고개를 숙인다. 고개가 남아 있다면. 생각에 대해 그만두자. 내가 지금 생각해본들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아무것도.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나. 늘 읽고 나면 괴롭다. 왜 나는 저렇게 쓰지 못하나. 왜 나는 못하나. 왜 나는 이 따위 물음만 계속해서 던지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한심할것인가. 정말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는 한가. 나도 언젠가 저기에 끼어 볼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든 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인간인지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한심하다는 것을 알면서. 괜찮지 않은지 괜찮은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인 나는 늘 불안하고 불길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삶은 언제나 괜찮았다. 나는 늘 견딜만했다. 남들은 나를 불쌍하게 여겼지만(내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나는 늘 견딜만했다. 아주 견딜만했다. 못 견딜 불행은 없었다. 못 견딜 공포도 없었다. 못 견딜 가난도, 불안도 없었다.
항상 못 견딜것처럼, 당장 죽을것처럼 굴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고 견뎠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일지도 모른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고 견디는 일. 나에게 나는 늘 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