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7(2)

 | 일기
2017. 10. 7. 04:47

쓰는 것만큼이나 읽는 것도 고역이다. 이것이 내 할 일이라고 여기며 소설을 읽어내려가자면 속이 답답하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다. 아무도 시킨 적 없으나, 내게 독서를 명령한 누군가를 향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소설은 재미 있으나 그것마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자리에 있는지 고민하고, 또 괜찮아졌다가 다시 절망하고. 친구였던 이들을 검색해보고 그들을 질투하고 때로는 연민하고. 내가 얼마나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불안하고 어려웠고 다시 또 절망하고 이를 악 물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그래서 지금 내 손에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만큼 왔는지 가늠한다. 그러다가 곧 팔을 내려 버린다. 팔이 있다면. 고개를 숙인다. 고개가 남아 있다면. 생각에 대해 그만두자. 내가 지금 생각해본들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아무것도.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나. 늘 읽고 나면 괴롭다. 왜 나는 저렇게 쓰지 못하나. 왜 나는 못하나. 왜 나는 이 따위 물음만 계속해서 던지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한심할것인가. 정말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는 한가. 나도 언젠가 저기에 끼어 볼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든 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인간인지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한심하다는 것을 알면서. 괜찮지 않은지 괜찮은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인 나는 늘 불안하고 불길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삶은 언제나 괜찮았다. 나는 늘 견딜만했다. 남들은 나를 불쌍하게 여겼지만(내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나는 늘 견딜만했다. 아주 견딜만했다. 못 견딜 불행은 없었다. 못 견딜 공포도 없었다. 못 견딜 가난도, 불안도 없었다.

항상 못 견딜것처럼, 당장 죽을것처럼 굴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고 견뎠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일지도 모른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고 견디는 일. 나에게 나는 늘 남 같았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1007

 | 일기
2017. 10. 7. 01:18

언제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새롭게 얻은 깨달음처럼 적는다.

결국은 쓰는 사람이 이긴다.

써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가 머리속에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꺼내놓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재미가 없는 이야기라도 계속 계속 쓰다 보면 누군가는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글은 써야만 한다. 그래야 독자가 생긴다. 독자가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 본연의 목적은 이룰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느끼길 바란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좋다. 우울함, 기쁨, 공포, 혼란, 재미 그 무엇이라도 좋다.

읽는 사람--독자--에게 아무것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글의 효용은 무엇인가?

기록물조차도 읽는 이에게 생각하게 하고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생각과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에게 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문자를 조합해서 문장을 써낸다고 모두가 글은 아니다.

수 없이 메모하고 계속해서 써야 한다. 항상 알고 있었지만 항상 실천하지 못한 일이다. 나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확신이 없다. 좋은 글을 쓰리라 다짐했을 때 내가 상정한 좋은 글은 무엇이었나?

아주 재미있는 글이었다. 그 재미는 여러가지 종류일 수 있겠지만, 아주 빨려들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좋은 글은 그런 것이었다.

언제까지 남들의 글을 읽으며 부러워하는 삶만 살 수는 없다. 의문문은 그만두자. 명확하게 끝나는 문장을 쓸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반드시. 만년필과 종이에 묻혀 사는 삶을 꿈꾸었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삶을 원한다. 책과 노트와 펜이 나를 둘러싼 삶. 나는 할 수 있다. 이전보다 그런 삶에 더 다가왔다.

지금의 나는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냐고? 있다. 그런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숨 쉬는 일도 버거운데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언가에 절박하게 매달리지도 않아서 한심하게 보일 법한 그런 날들이 있다. 그 시간마저 나를 여기로 인도하는 과정이었으니 후회는 없다.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하나 둘 버리고 잃어버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렇게나 가진것이 많았다. 그러니 버릴 것이 많았던 것이다. 앞으로도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게서 떠나고 나서야 내가 가지고 있었음을 아는 많은 순간과 사람들이 있겠지. 어쩌면 삶은 그렇게 손에 쥔 것들을 놓아가는 과정이리라.

너무 많이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엄마도 내 친구들도. 많은 고통은 없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나에게 바라는 축복이다. 어쩔 수 없이 미운 마음을 안고 사랑하면서 살아갈테니, 삐죽 솟은 미움들에 너무 많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410

 | 일기
2017. 4. 10. 17:06

마음 안에 부는 바람이 그치질 않는다. 며칠 동안 나는 너무 깊은 수렁에 잠겨 있었다. 그 수렁에서 나오고 싶은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 미친 상태. 우울감을 즐기는 우울증 환자라니 최악이다. 만일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도망치고도 남았다. 그러니 내가 누구에게 무슨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겠나. 나를 떠나는 누구라도 그럴만 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최대한 나를 끌어 올려 글을 쓰거나, 그게 안된다면 차라리 나를 지워서 '주인공'이 되어 글을 써야만 한다. 그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다. 내가 지금 집중하지 못한다면 너무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중하자. 나는 그래야만 한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닥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집중하자. 오로지 내 글에, 내가 써야 하는 글에, 거기에만 집중하자. 이런 다짐과 발악이라도 있어야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다.

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 수 없고, 고립시킬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나를 괴롭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완전히 믿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믿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마저 배반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그 절실함, 절박함으로 무엇을 잡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글이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꿈꿨고, 지금 그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다. 어쩌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다시 안 올 기회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할 수 있을만큼 해보자.

Posted by 권정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