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2

 | 일기
2017. 3. 22. 16:51

매일이 평화로우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다만 순간 순간의 평화 혹은 불편함이 지나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어떤 순간은 붙잡아 두고 싶고, 어떤 순간은 그저 숨을 참으며 견디게 된다. 요즈음은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이 잘 없다. 양파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나는 열심히 쓰고 있으니,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요즘은 우울증이 깊어진 탓인지 버티는 순간들이 훨씬 많다. 약을 계속 먹으면 정말 좋아지는걸까? 자꾸 의구심이 생긴다.

정말 내가 괜찮아질까? 이 견딜 수 없음을 견디다 보면 달라지게 될까.

생각을 하는 일은 괴롭기도 하고, 때로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차라리 아무 글이나 끄적이는 것처럼 매달리게 된다. 잘된 일이다. 나는 괴로울 때 글을 써왔고 그 못된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글이 잘 써질 것이다. 집중해야 하는 대상이 다른 시기가 온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일생을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할 수는 없으니, 연기자가 작품에서 열연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글에 좀 더 집중했다 가족에게 돌아가자. 그런 패턴이 익숙해지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 희망은 여기저기 흩어진 먼지같다. 열심히 구석구석 닦아 모아 놓으면 꽤 많은데, 너무나 넓게 퍼져 있어서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발에 밟혀 들여다 보면 아, 여기 있었지 하게 되는 것. 요즘은 청소를 해서 먼지를 한데 모아야 한다. 버려지는 먼지에 희망을 비유하면 우습지만, 희망이 버려진 자리에 남은 결과물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21

 | 일기
2017. 3. 21. 16:11

친구에게 내 극한의 감정을 전달한 뒤, 나의 감정이 어떻게 갈무리 되었는지 전혀 공유 없이 그녀가 나처럼 폭풍이 지나갔으리라 믿는 안일함으로 상처를 줬다. 나의 무례함에 너무 놀라고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의 감정 전이가 특히 잘 되는 나의 다정한 친구는 분명 그것을 버티고 나를 믿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을텐데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 들였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믿지 않아서 내 친구의 믿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자신을 믿지 않는 타인을 믿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마음이 필요한지 잘 알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로 창피하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잘 설명해 주는데까지 에너지를 쏟은 친구에게 감사하다. 그런 친구가 내 곁에 여전히 있어준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더 예의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몽롱한 상태로 인생을 살지 않고, 항상 명징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물론 그것이 잘 안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 그랬을 때 비로소 내 주변을 둘러볼 힘도 생기고 더 곧고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내자. 나는 이제 나 뿐 아니라, 다른 생명까지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인지 깨닫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20

 | 일기
2017. 3. 20. 15:08

집으로 돌아왔다. 양파를 보는 순간 마음이 미어졌다. 양파를 두고 어디 갈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깊은 애정에 사로잡혀 있다.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고 강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양파에 빠져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양파에게서는 아주 꼬소한 냄새가 난다. 내 강아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곁에 있기만 해도 행복하고 뿌듯한 존재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너무 감사한다. 우리 예쁜 강아지, 아프지만 말고 자라라는 기도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한다. 양파가 아프면 전부 내 탓인 것 같고, 양파가 행복하면 그저 기쁘다.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고,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이 마음이 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사랑이라면 너무 깊고 빠져 죽을 것 같다. 아무리 화가 나도 양파를 보면 화가 풀리고, 양파 때문에 서운하고, 양파 때문에 행복하다. 이 마음이 대체 뭘까.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게 될 줄 몰랐다. 신기하고 당황스럽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하루 종일 양파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잘 간다. 같이 뒹굴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모든 일상이 행복하다.

양파를 못 보게 되는 일은 절대 없길 바란다. 양파를 두고 언니와 싸우고 싶지 않다. 나만큼이나 언니에게도 양파가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언니와 내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서로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권정기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