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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정신 없이 보내려고 노력하니 정말 그렇게 된다. 혼자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회사를 찾고, 미래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일기도 쓰고 무엇을 했는지 하루를 정리하기도 한다. 게임을 하며 집중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내년까지는 조금씩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니까 이대로 살아야지. 조용하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연애는 미뤄두고 싶다. 만날 인연이라면 누구든 언제든 만나지겠지. 적어도 내년까지는 혼자 있고 싶다. 1년 정도 혼자 있으면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겠지. 다른 때는 이런 생각 잘 안했는데 이번에는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해 자꾸 고민하게 된다. 나이가 변한 탓도 있고 상황이 변한 탓도 있겠지. 나쁘지 않다. 탓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이 상황을 나쁘게 여기는 뉘앙스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항상 허공에 떠 있는 기분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땅에 발 붙인 기분이다. 이제 그래야 할 때니까. 괜찮다. 나는 아프고 다쳤지만 나을 수 있다.
겁나고 불안하고 혼란스럽지만 나쁘지 않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일을 할 시기인가봐.
여러가지 고민이 많지만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이다. 그 동안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왔다. 명확한 대상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혼자서 사는 삶에 대해 꿈꾼다. 물론 외롭겠지만 함께 있다고 외롭지 않을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컨트롤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더 깊이 고민하게 된 부분이 있다. 나는 아무래도 분명히 컨트롤프릭이다. 상황을 지배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모양이다. 그러니 똑같이 상황에 대해 지배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힘들다.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있을 때는 오히려 한 발 빼고 있는 제스쳐를 취하는데, 가장 친말하다고 느끼는 관계에서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면 컨트롤 가능한 나 자신과 일단 잘 지내보고, 그런 성향을 완급조절 할 수 있을 때 누굴 만나던지 말던지 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조종할 수 없지만 조금 더 순하고 보들한 성정을 가진쪽이 있기 마련이니 인연이라면 언젠가 누굴 만나겠지. 지금은 별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애인이든 친구든 깊은 관계를 새로 만들고 싶지 않다. 기존에 있던 관계들조차 조금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일하면서 사무적으로만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일하는 업계는 참으로 끈끈한 감정적 연대를 요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한테 다들 관심이 없으니 적당히 맞장구 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나는 그냥 일하고 돈벌고 평범하고 비슷한 일상을 살고 싶다. 그러다보면 나아지겠지. 무엇이든 나아질 것이다.
주문처럼 외운다. 나아질 것이다.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하게 살 것이다. 결심을 주문처럼 외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겠지. 지금도 많이 나아졌으니 더 나아지겠지. 이제 아이들 생각을 해도 데굴데굴 구르며 통곡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 한 번이라도 아이들을 만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겠지. 그래서 다시는 안 볼 결심을 했다. 함께할 수 없다면 다시는 안 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무슨 일이든 생겨서 아이들이 나한테 오면 내가 꼭 책임질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해야지. 내 아이들이 나처럼 떠돌게 하지 말아야지. 얼른 돈을 벌어야지. 마음이 너무 왔다갔다 한다. 내 아이들이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나한테 올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이기적이고 무서운 마음이 든다. 그런 상황이 되면 절대로 절대로 고민하지 않고 내가 키워야지. 어느쪽이 아이들에게 더 행복한 일일까? 사실 너무 보고싶다. 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그만 생각해야지.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나아졌다. 이제는 밤마다 울지도 않는다. 약은 먹지 않지만 잠도 잘 수 있다. 수 많은 꿈을 꾸지만, 약을 먹을 때에도 꿈은 늘 내 잠에 있었다. 사람을 만나서 웃을수도 있고 혼자서 책도 읽을 수 있다.
이 정도만 되면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괜찮아졌다. 다만 꿈 속에서 여전히 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현실이 아닌 것에 안심한다. 나는 다 괜찮아질거다. 지금의 외로움과 버거움을 견딜만큼 나아졌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다 좋아지겠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불안함이 있지만 그게 삶에 대한 것이지 당장 나의 안위와 일신의 안정에 대한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잊고 있었는데 나는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더 지날수록 그런 나를 다시 만난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많은 일이 귀찮아졌다. 워낙에 게으른 성정이지만, 더 많은 일에 에너지를 쏟기가 싫어졌다. 하루하루에 집중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일만 해도 버겁다. 혼자 있는 많은 시간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미련떨고 보고 싶다고 우는 것도 아이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키우며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해줄게 아니라면 나는 생각할 자격도 없다. 마음으로는 다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만 앞으로는 평생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들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지 않으며 온전히 내 시간들을 가진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새 회사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 출근 전이지만 그 회사에 가는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 다른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조금 더 고민의 여지가 있을텐데 기다리는 회사들은 내 서류를 천 번 정도 읽고 있다. 아마 1년 가량 쉬었으니 마음에 걸리겠지만, 그럼 그냥 면접 봐서 거르면 좋으련만 아쉽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타인은 또 타인의 일을 하겠거니 하고 살아야 한다. 누구도 무엇도 바꾸겠다는 야심만만함은 모두 지웠다. 나는 오로지 나만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타인 역시 나를 바꿀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많이 다쳤지만 완전히 부러지지 않았으니 그것에 집중하면서 살아야한다.
화가 날 때면, 역겨워 구역질이 날 때면, 손이 떨려 절로 주먹이 쥐어질 때면 글을 쓰겠노라 마음 먹는다. 다른 어떤 일로도 풀어내지 못하는 내 마음은 글이 된다. 하나씩 글자를 조합해 문장으로 다시 단락으로 글로 자라나는 온갖 마음을 본다. 내 마음인데 내가 잘 몰랐던 부분들이 삐죽 나와있다.
숨을 크게 들이쉬는것으로도 산소가 부족해 눈앞이 캄캄해질 때 글을 쓴다. 간신히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조금씩 사고가 가능해진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일도 가능해진다. 겨우 겨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나?
잘 모르겠다. 아이들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비겁한 일이다. 아이들은 나 없어도 잘 살텐데 무슨 아이들 때문이야. 어쩌면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지.
우울증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조금씩 나아지겠지. 낫는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서 약을 삼킨다. 약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낫고 있겠지. 그렇게 믿는다.
정말 모든일이 좋아지고 있니?
하루는 미치게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환장하겠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죽고 싶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으로 너무나 충분할 것 같다가
내 글이 안 남는다면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바심에 쫓기다가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이게 미친게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쓰는 것만큼이나 읽는 것도 고역이다. 이것이 내 할 일이라고 여기며 소설을 읽어내려가자면 속이 답답하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다. 아무도 시킨 적 없으나, 내게 독서를 명령한 누군가를 향해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소설은 재미 있으나 그것마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자리에 있는지 고민하고, 또 괜찮아졌다가 다시 절망하고. 친구였던 이들을 검색해보고 그들을 질투하고 때로는 연민하고. 내가 얼마나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불안하고 어려웠고 다시 또 절망하고 이를 악 물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그래서 지금 내 손에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만큼 왔는지 가늠한다. 그러다가 곧 팔을 내려 버린다. 팔이 있다면. 고개를 숙인다. 고개가 남아 있다면. 생각에 대해 그만두자. 내가 지금 생각해본들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아무것도.
나는 무엇을 바라며 살아왔나. 늘 읽고 나면 괴롭다. 왜 나는 저렇게 쓰지 못하나. 왜 나는 못하나. 왜 나는 이 따위 물음만 계속해서 던지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한심할것인가. 정말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는 한가. 나도 언젠가 저기에 끼어 볼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든 하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얼마나 형편 없는 인간인지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한심하다는 것을 알면서. 괜찮지 않은지 괜찮은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인 나는 늘 불안하고 불길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삶은 언제나 괜찮았다. 나는 늘 견딜만했다. 남들은 나를 불쌍하게 여겼지만(내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나는 늘 견딜만했다. 아주 견딜만했다. 못 견딜 불행은 없었다. 못 견딜 공포도 없었다. 못 견딜 가난도, 불안도 없었다.
항상 못 견딜것처럼, 당장 죽을것처럼 굴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고 견뎠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일지도 모른다. 나를 남처럼 바라보고 견디는 일. 나에게 나는 늘 남 같았다.
언제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새롭게 얻은 깨달음처럼 적는다.
결국은 쓰는 사람이 이긴다.
써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이야기가 머리속에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꺼내놓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재미가 없는 이야기라도 계속 계속 쓰다 보면 누군가는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글은 써야만 한다. 그래야 독자가 생긴다. 독자가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 본연의 목적은 이룰 수 없다. 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느끼길 바란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좋다. 우울함, 기쁨, 공포, 혼란, 재미 그 무엇이라도 좋다.
읽는 사람--독자--에게 아무것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글의 효용은 무엇인가?
기록물조차도 읽는 이에게 생각하게 하고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생각과 마음을 담아서 쓴 글이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에게 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문자를 조합해서 문장을 써낸다고 모두가 글은 아니다.
수 없이 메모하고 계속해서 써야 한다. 항상 알고 있었지만 항상 실천하지 못한 일이다. 나에게 끈질기게 매달려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확신이 없다. 좋은 글을 쓰리라 다짐했을 때 내가 상정한 좋은 글은 무엇이었나?
아주 재미있는 글이었다. 그 재미는 여러가지 종류일 수 있겠지만, 아주 빨려들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좋은 글은 그런 것이었다.
언제까지 남들의 글을 읽으며 부러워하는 삶만 살 수는 없다. 의문문은 그만두자. 명확하게 끝나는 문장을 쓸 것이다. 나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반드시. 만년필과 종이에 묻혀 사는 삶을 꿈꾸었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삶을 원한다. 책과 노트와 펜이 나를 둘러싼 삶. 나는 할 수 있다. 이전보다 그런 삶에 더 다가왔다.
지금의 나는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그럴 수 없는 때가 있냐고? 있다. 그런 정신이 없을 때가 있다. 숨 쉬는 일도 버거운데 제대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무언가에 절박하게 매달리지도 않아서 한심하게 보일 법한 그런 날들이 있다. 그 시간마저 나를 여기로 인도하는 과정이었으니 후회는 없다. 많은 것들을 잃었다. 하나 둘 버리고 잃어버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렇게나 가진것이 많았다. 그러니 버릴 것이 많았던 것이다. 앞으로도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게서 떠나고 나서야 내가 가지고 있었음을 아는 많은 순간과 사람들이 있겠지. 어쩌면 삶은 그렇게 손에 쥔 것들을 놓아가는 과정이리라.
너무 많이 괴롭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엄마도 내 친구들도. 많은 고통은 없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그들에게, 나에게 바라는 축복이다. 어쩔 수 없이 미운 마음을 안고 사랑하면서 살아갈테니, 삐죽 솟은 미움들에 너무 많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 안에 부는 바람이 그치질 않는다. 며칠 동안 나는 너무 깊은 수렁에 잠겨 있었다. 그 수렁에서 나오고 싶은지 아닌지조차 불분명한 미친 상태. 우울감을 즐기는 우울증 환자라니 최악이다. 만일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도망치고도 남았다. 그러니 내가 누구에게 무슨 불만을 토로할 수 있겠나. 나를 떠나는 누구라도 그럴만 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최대한 나를 끌어 올려 글을 쓰거나, 그게 안된다면 차라리 나를 지워서 '주인공'이 되어 글을 써야만 한다. 그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다. 내가 지금 집중하지 못한다면 너무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중하자. 나는 그래야만 한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닥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집중하자. 오로지 내 글에, 내가 써야 하는 글에, 거기에만 집중하자. 이런 다짐과 발악이라도 있어야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다.
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 수 없고, 고립시킬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나를 괴롭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완전히 믿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믿을 수 없다. 아직까지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마저 배반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
그 절실함, 절박함으로 무엇을 잡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글이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꿈꿨고, 지금 그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다. 어쩌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다시 안 올 기회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할 수 있을만큼 해보자.
양파를 입양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양파는 몸무게가 정확히 두 배가 되었고 두 차례 예방 접종을 더 맞았다. 앞으로 한 달만 더 있으면 양파는 예방 접종이 모두 끝난다. 그 때까지 얼마나 자라 있을지 궁금하다. 양파가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랐으면 한다. 그래서 오래도록 나와 언니와 함께 있길 바란다. 우리 세 식구 모두 행복해지길 바란다.
이 바람들은 때로는 너무나 강력해서 나를 뒤덮을 것 같고, 때로는 너무 부질 없어 곧 사그라질 것을 붙잡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 번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우리의 생을 지나는 시간 동안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관계는 늘 조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긴장을 풀 수가 없다. 무엇이든 예측 가능하다면 재미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로울 것이다. 나는 그저 모든 것이 조용히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감당할 수 없는 폭풍우는 이미 모두 지나갔기를 바란다. 내 삶은 언제나 그래왔듯 바람으로 가득하고, 내 자국들은 지난 폭풍우에 모두 쓸려간 듯 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자취를 남겼는지 나조차 모르게 되었으니, 이왕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 또한 조용하고 큰 자국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