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26

 | 일기
2017. 3. 26. 16:43

양파의 자율 급식을 시작했다. 예상했던대로 양파는 먹고 토하고 또 먹고 토하고 있다. 사실 걱정은 되지만,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양파가 언제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거라고 믿고 있다.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주고 싶다. 언제든 먹고 싶으면 먹고 배가 부르면 멈출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또 양파는 늘 너무 작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있으니 쑥쑥 크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늘 밥이 부족한 기분이 들어서 불안해 하는걸 보고 있으면 속이 상한다.

내가 자신을 절대 굶게 내버려 두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생기면 좋겠다.

그리고 확신이 생길 때까지 시간이 짧으면 좋겠다. 자꾸 자꾸 억지로 먹어서 토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괴롭다. 밥그릇이 비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궁금하다.

나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두는 일이 필요하다. 나와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하지만, 나를 가장 잘 챙겨야 할 사람은 나다. 물론 언니를 잘 챙기고 양파를 잘 챙기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다만 내가 에너지가 없으면 그들을 돌볼 수 없으며, 내 에너지를 깎아서 주는 일이 아주 어리석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 건강, 내 일, 내 에너지를 소중하게 생각하자. 내가 있어야 다른 이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즘은 내가 있어야 다른 존재도 있다는 기본 명제를 내게 이해시키고 체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지치고 힘들면 좀 쉬어가도 된다고 마음 먹는 일이 아주 어렵다. 내가 언제나 질풍처럼 달려온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다. 템포를 조절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없기 때문일까?

외부요인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속도와 밀도를 조절하는 일을 이제서야 고민하고 배워 볼 생각을 하다니 어리석고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고민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24

 | 일기
2017. 3. 24. 21:35

요즘은 그래도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에 비해 매일 쓰는 양이 늘었다. 친구는 내게 스스로를 믿고 칭찬도 잘 해주라고 했으며, 나는 친구의 조언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니까 나를 칭찬해야지. 아이 돌보고 집안일 하면서도 글을 쓰고 있으니 훌륭하다.

밖에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삶은 내게 이롭다. 나는 너무나 쉽게 피곤해서 열이 오르고, 예상치 못한 음식 때문에 탈이 나고, 병이 나서 앓아 눕는다. 한편으로는 한심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그러나 나를 다그치는 시기는 조금 더 후로 미루자. 지금은 그저 약간 불쌍해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하면서 스스로 칭찬해야 한다.

내일은 양파의 에방 접종일이다. 기쁘게도 양파는 잘 자라고 있고, 크게 아프지 않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양파를 보면 마음이 아주 뿌듯하다. 벌써 우리 양파 다 컸다는 생각도 들고, 반대로 우리 아기 언제 자라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의 시간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흘러간다. 신기하고 기특한 일이다. 앞으로도 아이의 삶에 내가 쭉 함께 하길 기도한다.

글은 언제 연재를 시작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조금 더 써두고 퇴고까지 하고 연재를 시작하면 좋겠는데, 하루에 쓰는 양은 너무 적고 나를 타이트하게 다그칠 마음이 나한테는 없고....... 그러니 연재라도 시작하면 괴롭더라도 조금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주 안에 시작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부디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22

 | 일기
2017. 3. 22. 16:51

매일이 평화로우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다만 순간 순간의 평화 혹은 불편함이 지나간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어떤 순간은 붙잡아 두고 싶고, 어떤 순간은 그저 숨을 참으며 견디게 된다. 요즈음은 붙잡아 두고 싶은 순간이 잘 없다. 양파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나는 열심히 쓰고 있으니,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요즘은 우울증이 깊어진 탓인지 버티는 순간들이 훨씬 많다. 약을 계속 먹으면 정말 좋아지는걸까? 자꾸 의구심이 생긴다.

정말 내가 괜찮아질까? 이 견딜 수 없음을 견디다 보면 달라지게 될까.

생각을 하는 일은 괴롭기도 하고, 때로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차라리 아무 글이나 끄적이는 것처럼 매달리게 된다. 잘된 일이다. 나는 괴로울 때 글을 써왔고 그 못된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글이 잘 써질 것이다. 집중해야 하는 대상이 다른 시기가 온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일생을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할 수는 없으니, 연기자가 작품에서 열연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글에 좀 더 집중했다 가족에게 돌아가자. 그런 패턴이 익숙해지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 희망은 여기저기 흩어진 먼지같다. 열심히 구석구석 닦아 모아 놓으면 꽤 많은데, 너무나 넓게 퍼져 있어서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 발에 밟혀 들여다 보면 아, 여기 있었지 하게 되는 것. 요즘은 청소를 해서 먼지를 한데 모아야 한다. 버려지는 먼지에 희망을 비유하면 우습지만, 희망이 버려진 자리에 남은 결과물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21

 | 일기
2017. 3. 21. 16:11

친구에게 내 극한의 감정을 전달한 뒤, 나의 감정이 어떻게 갈무리 되었는지 전혀 공유 없이 그녀가 나처럼 폭풍이 지나갔으리라 믿는 안일함으로 상처를 줬다. 나의 무례함에 너무 놀라고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의 감정 전이가 특히 잘 되는 나의 다정한 친구는 분명 그것을 버티고 나를 믿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을텐데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 들였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믿지 않아서 내 친구의 믿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자신을 믿지 않는 타인을 믿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마음이 필요한지 잘 알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로 창피하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잘 설명해 주는데까지 에너지를 쏟은 친구에게 감사하다. 그런 친구가 내 곁에 여전히 있어준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더 예의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몽롱한 상태로 인생을 살지 않고, 항상 명징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물론 그것이 잘 안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 그랬을 때 비로소 내 주변을 둘러볼 힘도 생기고 더 곧고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내자. 나는 이제 나 뿐 아니라, 다른 생명까지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인지 깨닫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20

 | 일기
2017. 3. 20. 15:08

집으로 돌아왔다. 양파를 보는 순간 마음이 미어졌다. 양파를 두고 어디 갈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깊은 애정에 사로잡혀 있다. 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고 강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양파에 빠져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양파에게서는 아주 꼬소한 냄새가 난다. 내 강아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곁에 있기만 해도 행복하고 뿌듯한 존재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너무 감사한다. 우리 예쁜 강아지, 아프지만 말고 자라라는 기도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한다. 양파가 아프면 전부 내 탓인 것 같고, 양파가 행복하면 그저 기쁘다.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싶고,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이 마음이 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사랑이라면 너무 깊고 빠져 죽을 것 같다. 아무리 화가 나도 양파를 보면 화가 풀리고, 양파 때문에 서운하고, 양파 때문에 행복하다. 이 마음이 대체 뭘까.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게 될 줄 몰랐다. 신기하고 당황스럽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하루 종일 양파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잘 간다. 같이 뒹굴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모든 일상이 행복하다.

양파를 못 보게 되는 일은 절대 없길 바란다. 양파를 두고 언니와 싸우고 싶지 않다. 나만큼이나 언니에게도 양파가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언니와 내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서로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19

 | 일기
2017. 3. 19. 03:34

불면의 밤이다. 양파를 두고 나왔다는 자책감이 이렇게 심할 줄 몰랐다. 그리고 보고싶다. 말이 안되는데 가슴 미어지게 속상하다. 아이를 데리고 나올것을. ​어찌해야 할까. 이 폭풍이 과연 지나가는 폭풍일까 아닐까.

괴로워서 잘 수가 없다. 집에 가고 싶은 피로함이다. 이제 그만 쉬고 싶다. 사는 일이 염치 없다. 잘 수도 울 수도 없다. 이리 노곤한 마음인데 이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한다 한들 무슨 아름다운 애정일까. 지독하게 숨 막히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이름짓지 말자. 내 아이 아름다운것만 보고 살기를 바란다.

쉬고 싶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15

 | 일기
2017. 3. 15. 16:22

양파를 너무 사랑하는 내 마음이 나와 양파에게 독이 된다. 사랑만 하고, 교육 할 줄은 모르는 초보 가족의 흔한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나는 양파와 함께 있으면 온 신경이 양파에게 쏟아져 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조금이라도 아이가 잘못될까봐 덜덜 떤다. 양파가 발이라도 한 번 삐끗하면 뭔가 잘못 되었다고 떨며 병원에 데려가려고 한다. 잘 생각해보면, 집 바닥은 내가 걷기에도 너무나 미끄럽고 나도 늘 넘어지지 않기 위해 천천히 움직인다. 양파는 아직 그걸 깨우치기 어려운 아기이고, 그래서 신이 나면 마구 달리고 그래서 약한 다리로 넘어지는 일이 하늘이 무너질 일은 아니다. 그런데 머리로 이걸 알아도 눈 앞에서 아기가 넘어지면 너무나 무섭다. 식사량이 늘어나면서 설사를 하는 일도 잦을텐데, 그저 변이 조금만 물러도 호들갑을 떤다. 이런 행동들이 나와 양파 모두에게 안 좋다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하다.

양파가 살아 있는 생명임을 알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에 쥐고 키우는 것이 건강한 양육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양파도 그런 내 방식에 스트레스 받으며 나도 심한 스트레스로 몸살이 날 지경이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되 과한 관심은 모두에게 독이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겠다.

계속해서 피곤이 가시지 않고, 꿈은 계속해서 악몽이다. 자도 자도 개운하지 않고 깨어 있어도 잠들어도 누군가에게 시달린다. 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은 나다. 조금의 긴장 풀림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도 힘들다. 아이를 키우고서야 아이를 키우며 예민해지는 마음을 이해한다. 양파의 방식과 내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어렵고 괴로울 때도 있다.

내가 꼭 안아주면 양파는 갑갑해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당연한 사실인데, 마음으로 그것이 서운하다. 양파는 뽀뽀를 할 줄 모른다. 나는 양파를 핥아줄 수 없다. 내가 양파에게 대체 뭘 해줄 수 있을까? 양파에게 따뜻한 집을 주고 신나게 놀 장난감을 사주고 양파의 밥을 챙기고 용변 본 것을 처리한다. 나는 양파에게 어떤 존재일까? 밥 주는 인간? 소변을 보고 나면 귀찮게 와서 발을 닦아대는 존재? 잘 모르겠다. 마음이 심난하고 어지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파를 사랑하며, 양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12

 | 일기
2017. 3. 12. 20:00

내 마음은 바람 부는 들판처럼, 쉽게 방향이 달라진다. 길이었던 곳이 사라지고, 없던 길이 생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채 그저 서 있을 뿐이다. 돌아본다고 한들 지나온 길을 알 수 없으니 내가 가는 곳이 길이겠거니 하고 걷는다. 하지만 솔직히 두려울 때가 많다. 미심쩍기도 하고 자꾸 불안한 마음이 자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겠나,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나를 믿는 수 밖에 없다.

양파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다행이다. 관절 영양제가 도착했고, 열심히 먹이고 있다. 예방 차원으로 먹이는 단계를 주문했다. 어린 강아지라서 좋은 성분이 가득해도 다 흡수 못하거나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뒷다리가 조금 약해 보이는데, 아직 너무 어린이라서 어차피 수술도 어렵고 1년 정도 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니 영양제가 효과가 있기만을 바란다.

날씨가 좋으면 언니는 애기 데리고 나오면 참 좋겠다고 얘기한다. 벌써 애기 옷이며 장난감만 하루 종일 들여다 보고 있다. 그런 언니를 타박하지만, 나도 멍하니 있을 때는 아기 생각을 한다. 신이 나서 달려가는 모습이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깡 하고 화를 내는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우리가 셋이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항상 내 아이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자꾸 커진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11

 | 일기
2017. 3. 11. 15:49

오늘은 양파의 노즈워크 담요가 도착했다. 다른 블로그에서 보니 아이들이 열심히 킁킁거린다길래 무슨 말인가 했는데, 정말 양파가 킁킁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숨겨진 사료를 찾았다. 하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아직 아가라 그런지 냄새는 맡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강아지가 킁킁 소리를 내는 것조차 귀여울 줄은 몰랐다. 양파 덕분에 몰랐던 세상과 감정을 만난다.

양파는 하루종일 놀고 먹고 자고 싼다. 그 모습이 기특하다. 무탈하게 자라기만을 바라는데,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뛰어 놀아줘서 고맙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할텐데 아직 물을 자주 마시지는 않아서 그것만이 걱정이다. 다음주에는 2차 예방 접종을 맞으러 간다. 5차까지 다 맞히면 여기 저기 양파를 데리고 산책할 생각에 벌써 기분이 좋다. 지금은 멀리 나갈 수가 없어서 집 앞 복도만 왔다갔다 하는데 귀를 펄럭이며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언니는 양파가 너무 귀여운 모양인지 양파를 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 무해하고 선한 존재. 어떤 의도도 없이 원하는대로 행동하고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존재. 언니는 그런 존재가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부디 잃기 전에 소중함을 알았으면 한다.

하루는 양파와 언니로 가득 차 있다. 문득 그 안에 나는 어디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안정감, 믿음, 사랑 이런 것들이 바로 여기에 있는걸. 다만 내가 두려운 것은 내가 오로지 멈춰 있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군가 건네 주겠거니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지금 하루 하루 삐뚤빼뚤한 문장으로 일기를 쓰는 연습을 하는 것도 움직이기 위해서다. 쓰다 보면, 읽다 보면, 생각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열심히 움직이고 사랑할 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으로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쓸 수 있는 시기이니,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정진해야 한다.

Posted by 권정기린

20170310

 | 일기
2017. 3. 10. 20:07

아이가 생긴 이후 삶의 우선 순위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아무리 귀찮아도 바닥 청소를 빼먹지 않고, 항상 아이 물 그릇을 신경 쓰고, 적정 온도와 적정 습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양파가 뛰어 노는 동안은 양파에게 위험한 장소가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양파가 넘어지지 않을지 지켜본다. 내 밥을 먹으면 아이가 밥 먹을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하루는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할지에 대해 골몰하고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온갖 물건들이 필요해졌다.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길 때도 있지만, 아이를 보는 순간 곧 아이에게 온 신경이 다 간다. 어딜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잘 안 들고, 오래 나가 있을 수도 없다. 양파는 짖지도 떼를 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을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무엇을 하든 양파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왜 사람들이 강아지 밥 때문에 그렇게 발을 동동거리고 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강아지는 하루 정도 혼자 있어도 되는 동물인 줄 알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하루든 이틀이든 나 혼자 밥 먹고 물 마시고 내 할 일 하며 지낼 수 있지만, 양파는 내가 없으면 밥도 물도 놀이 상대도 없어진다. 언니와 둘이 어떤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한다.

내가 가장 생각하지 않았던 미래가 내 삶이 되었다. 배우자가 생기고, 아이를 기르는 삶. 누군가는 나에게 그게 무슨 결혼이고 강아지가 무슨 아이냐며 우스워할 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내가 그렇게 보인다. 가족이 반드시 필요한 어린 아이를 키우며, 서로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삶. 나는 내가 언제까지나 혼자일 줄 알았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 와서 결혼한 이와 아이를 가진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라는 것은 또 이렇게 순간이다. 되어 보니 알겠다. 모든 것을 그저 한 순간에 받아들이게 된다. 아이가 아프면 발을 동동 구르고, 미치겠고, 온갖 일들이 떠올라 괴롭다. 아이가 밥을 잘 먹으면 다 좋다. 그보다 뿌듯한 일이 없다. 하루 종일 아이 밥 생각만 하고 있다. 거기에 조금 남는 시간에 언니의 일정과 나의 일정을 조금 끼워 넣는다. 그러니 하루가 대체 어떻게 가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바쁘다. 이런 삶을 계획해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삶이다.

Posted by 권정기린